Panel 21

日本的反戰與和平運動

日本戰後和平運動的全面復興,可以視為1950年朝鮮戰爭後,為反對日本重新武裝,國民中心提出了“四項和平原則”(完全和平、保持中立、反對軍事基地、反對重新武裝),以及1954年“福龍五號”事件(一艘日本漁船在太平洋沿岸遭受美國核試驗所輻射)發生後一年,在結果所引發的世界反彈所引發的原子彈

大約在同一時期,勞工運動在所有反戰與和平運動中都發揮了重要作用,其中包括反對美國空軍立川基地擴建並最終成功遷移的“砂川鬥爭”(1955年至今);反對延長日美安保條約的“安保鬥爭”(1960年)、阻止美軍坦克運往越南的““安全”鬥爭”(1972年)。

在1972年行政權回歸日本的沖繩,包括全軍樓(美軍基地工會)總罷工(1971年)和「回歸祖國的鬥爭」(1972年)在內的勞工和地方運動的努力尤為引人注目。此外,自1997年以來,也爆發了反對擴建邊野古美軍基地的居民運動。沖繩位於東亞中心地帶,其反戰和平運動的「生命是寶」精神也應為和平解決釣魚島問題和台海爭端做出貢獻。

戰後反戰和平運動反思了侵略歷史以及戰爭造成的傷害,但我們需要與東亞人民一道,更加切實地正視歷史,努力建構一個沒有戰爭、沒有剝削、和平民主的東亞。


일본의 반전 평화운동

전후 일본의 평화운동의 본격적인 부활은 1950년 조선전쟁을 계기로 한 일본의 재군비화에 반대하는 내셔널센터의 평화사원칙(전면강화·중립견지·군사기지 반대·재군비 반대) 1954년 태평양 앞바다에서 미국의 핵실험으로 일본의 어선이 피폭한 「제5복룡환 사건」의 다음 해에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원수폭 금지 세계 대회」를 계기로 한 원수폭 금지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을 거의 같게 해, 재일 미군립 강 비행장의 확장에 반대해 이전을 이긴 “사가와 투쟁”(55년~), 일미 안보 연장에 반대하는 “안보 투쟁”(60년), 베트남에의 미군 전차의 수송을 멈춘 ‘전차투쟁'(72년)을 비롯한 베트남 반전, 헌법 제9조의 ‘전쟁 포기’ 조항을 지키는 헌법 개악 반대 운동 등 모든 반전 평화운동에 노동운동이 큰 힘을 발휘해 왔다.

특히 72년 시정권이 일본으로 반환된 오키나와에서는 전군노(미군기지노동자조합) 제네스트(71년)와 ‘조국복귀투쟁'(72년)을 비롯해 노동운동과 지역운동의 대처가 특필된다. 그리고 97년부터 이어지는 베노고미군 기지의 확장에 저항하는 주민운동. 지리적으로도 동아시아의 배꼽 위치에 있는 오키나와의 반전 평화운동 ‘생명 보물’의 정신은 센카쿠/낚시섬/낚시대 문제와 대만 해협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전후의 반전평화운동은 전쟁 피해와 함께 침략가해의 역사에도 마주해 왔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동아시아 민중과 함께 역사에 진지하게 마주하며 전쟁도 착취도 없는 평화로운 민주적인 동아시아를 만드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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