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el 7

力求消除性別歧視

在1960年代和70年代,無論教育背景如何,女性的薪資都低於男性,晉升也「舉步維艱」。雖然只有高中文憑的男性自然會享受加薪,但人們普遍認為女性員工會「為了結婚而退休」。

在外資企業殼牌石油公司(現出光興產株式會社),由柚木康子領導的女性工會成員發起了爭取保護母親權益和消除歧視的運動。 1981年,工會成員發起了一場有針對性的罷工,要求縮短托兒所的工作時間,聲稱下午5點下班不足以接孩子放學。

隨後,在「男女平等」的口號下,高薪且將承擔減薪負擔的男性在五個工作日中罷工一天,而女性則罷工剩餘的四個工作日。這場由男性和女性共同發起的運動和罷工,在職場上營造了一種期望每個人都能兼顧工作和育兒的氛圍。

1987年,當公司也面臨嚴重的工會成員歧視時,工會成員們發起了為期10個月的罷工,抗議不合理的調動。在公司與(當時的)昭和石油合併後,70%的工會成員獲得了負面評價。

1994年,公司提起訴訟,要求糾正性別薪資歧視。 2003年,該公司被判違反了規定男女同工同酬的《勞動基準法》,並被命令賠償約4,500萬日圓。隔年,柚月和其他12名女性工會成員對公司提起訴訟,要求賠償約5.5億日圓。 2009年,東京地方法院裁定這種性別歧視違法。


남녀 차별 해소를 요구하고

1960년대~70년대, 학력에 관계없이 여성은 남성보다 임금이 낮게 억제되어 승진은 ‘잠자는’이었다. 남성은 고졸이어도 자연스럽게 승급해 나가는 한편, 여성 사원은 결혼하면 「수퇴직」을 하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외자계 기업의 쉘 석유(현·이데미츠 코산)에서는 유키 야스코씨를 비롯한 여성 조합원이 모성 보호나 차별 시정을 요구해 운동을 전개. 퇴사 17시에는 보육원의 맞이에 늦지 않는다고 하여, 육아시 단요구를 내걸고 1981년, 조합원이 지명 파업을 결행했다.

그 후 ‘남자도 여자도’의 슬로건 아래 고임금으로 임금 컷액 부담이 많아지는 남성이 5일간 근무일 중 하루만을, 여성은 나머지 4일간을 파업에 들어갔다. 남녀의 차이 없이 운동을 담당 파업을 하고 있는 모습은 모두가 육아와 일을 양립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를 직장에 보여주었다.

회사에서 조합원으로의 차별도 심했던 1987년에는 불합리한 배전에 반대해 10개월에 걸친 파업으로 싸웠다. 쇼와 석유(당시)와 합병한 후에는 70%의 조합원이 마이너스 평가를 받게 되었다.

1994년 남녀임금차별 시정을 요구한 재판에서는 2003년 남녀 동일임금을 정한 노기법 위반이 인정돼 회사에 약 4500만엔의 지불이 명령되었다. 이듬해 유즈키씨 등 12명의 여성 조합원이 약 5억 5천만엔의 배상을 요구해 회사를 제소. 도쿄지방법원은 2009년 이 남녀차별이 불법이라고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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